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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은 희귀병 아들과 딸을 위해 직접 치료제 개발한 '존 크롤리 부부'의 감동 실화 입니다.

 

 

폼페병!!

 

폼페병은 서서히 근육이 약해지는 퇴행성 질환으로 나중에는 제 힘으로 걸을 수도, 심지어 숨을 쉴 수도 없는 무서운 병입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환자가 만 명도 안되는 희귀한 유전병으로 어릴 때 폼페병을 진단 받으면 두 살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아쉽게도 치료약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폼페병은 유일하게 치료제를 보유한 근육병이 되었습니다.

 

바로 존 크롤리의 노력과 부성애의 결과였습니다.

 

그의 삶은 영화 ‘로렌조 오일’을 연상시키는 부성애 드라마로 전 세계를 감동시켰습니다.

 

'조금만 더 하루만 더'

 

존 크롤리와 에일린 크롤리 부부에게는 3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 중 둘째 딸 메건과 막내아들 패트릭은 폼페병이라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희귀병에 걸린 채 태어났습니다.

 

 

딸 메건에게 이상 징후가 발견된 것은 생후 4개월이 되던 1997년 4월, 아이는 구르거나 기지 못했고 우유를 제대로 삼키지도 못했습니다. 메건은 폼페병 진단을 받았고 태어난 지 일주일 밖에 안 된 막내아들 패트릭에게도 검사 결과 역시나 폼페병 이었습니다.

 

의사는 두 아이 모두 ‘다섯 살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발병률이 1000분의 1 미만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두 아이들..

 

하지만 존 크롤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와 아내 에일린 씨는 인터넷과 의학 전문잡지를 뒤지며 치료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폼페병의 원인이 글리코겐을 분해하는 ‘알파-글루코시다아제’라는 효소가 부족해 생기는 병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하지만 원인을 알아도 이 병을 고쳐 줄 의사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두 아이의 상태는 점점 나빠져 호흡기 튜브를 꽂지 않으면 숨조차 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2000년 크롤리 씨는 세계적인 제약회사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의 중역 자리를 내던지고 폼페병 치료제를 연구하는 신생 제약회사 노바자임으로 회사를 옮겼습니다.

 

 

연구 실적만 있지 경영에는 서툰 새 회사의 보유 자금은 고작 3만7000달러!!

 

신약 개발은커녕 직원들 한 달 월급을 주기도 빠듯한 회사였습니다.

 

존 크롤리는 미 대륙을 횡단하다시피 투자자를 찾아 나섰지만 말도 안 되는 연구계획에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모멸과 냉소만 돌아왔습니다.

 

 

결국 오클라호마의 집을 담보로 10만 달러를 대출받아 연구비를 댔고 또 ‘어린이 폼페병 재단’을 만들어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매주 폼페병 환자와 부모들을 모아 정보를 교환하는 시간도 마련했습니다.


이를 악문 노력으로 1억 달러의 투자금을 이끌어 낸 존 크롤리

 

 

회사가 젠자임제약과 합병한 뒤 연구를 계속한 결과 최초의 폼페병 치료제 미요자임이 탄생했고, 마침내 2006년 FDA의 승인을 받아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미요자임을 메건에게 투약한 결과 남들의 2배 크기로 부풀었던 메건의 심장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아쉬운점은 투약시기가 늦은 탓에 아이들의 건강 상태는 더 이상 호전 되지 못하고 정체기를 맞이했습니다.

 


좀 더 어리고 건강했을 때 마이오자임 치료를 받았더라면 훨씬 튼튼해졌을 것이 분명했는데..

 

 

하지만 존 크롤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병을 초조해하기보다는 일생 동안 아이들과 함께 완주해야 하는 마라톤임을 알기 때문 입니다.

 

 

그렇기에 크롤리 가족은 각자의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지금의 보석 같은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있습니다.

폼페병과 존 크롤리 그리고 마이오자임!! 
 

영화 <로렌조 오일>의 오돈 부부처럼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단 1%의 가능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존 크롤리의 노력으로 이제 폼페병은 불치병이 아닙니다.

 

존 크롤리의 이야기는 2010년 영화(해리슨포드의 특별조치)로 제작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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